논제를 분석하고 말할 내용을 정리한 후 대담을 연습하는 것은 토론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논거를 구상하고 난 후에 거쳐야 할 단계가 아직 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생각해낸 논거들을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논거라도 제시되는 논거 순서에 따라 전달력과 설득력이 달라진다. 각 논거는 나름의 분류 기준에 따라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논거들이 모여 나의 입장과 관점을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즉, 독립적으로 구성된 각 논거는 논리의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의미이다.
논거를 배열하는 방법에는 시간순으로 배열하거나 원인과 결과 순으로 배열하는 기본적인 방식부터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으로 내려가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다만 논거가 무엇인지, 논거 간 연관이 있는지에 따라 논리를 구조화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하나의 정형화된 모델은 없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우리 측의 논리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논거 배열 방법이 있다. 바로 가치와 효용 순으로 논거를 배열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어떤 말이나 행위, 또는 정책에 있어 '명분과 실리'를 따지거나 명분 대 실리'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를 토론에 적용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을 수 있고, 이는 곧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명분과 실리는 토론에서 각각 가치와 효용으로 나타나는데, 논거의 순서를 정할 때도 가치와 효용 순으로 구성하면 전달력과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앞부분에는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한 논거를, 다음 부분에는 효과나 이익을 다루는 논거를 배치하는 것이다.
토론의 내용은 크게 가치와 효용에 관한 쟁점으로 나뉜다. 전자는 왜 이러한 선택이나 개입(정책의 도입)이 필요한지, 어떠한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에 관한 주장이다. 후자는 이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정부가 개입하면 어떠한 효과나 이익 (반대 측의 경우 불이익)이 있는지, 실현 가능한지에 관한 주장이다. 논제마다 가치와 효용을 다루는 비중이 다를지언정 두 쟁점은 거의 모든 토론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선택이나 행위를 할 때는 그로 인한 예상 이익이나 비용을 고려하게 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이익인지 불이익인지를 결정하는 기준, 즉 가치와 방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가치를 제시하고 나서 효용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면 더 포괄적이면서 심층적으로 나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이 효과적인 또 한 가지 이유는 가치와 효용 모두 사람을 움직이는 데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특정 정책의 실행 방안과 긍정적인 효과를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그 정책이 사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어떠한 가치를 옹호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즉, 토론자로서 '왜'를 설명하는 정당성과 '어떻게'에 대한 편익을 알려줘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논거를 배열할 때는 가치에 관한 논거로 시작해서 효용에 관한 논거로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다'라는 주제에 대해 찬성 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 대학 무상교육은 현재 예산으로 충분히 실행할 수 있다. · 대학 무상교육의 도입은 사회의 계층 이동성을 확대한다. · 대학 등록금 부담을 완화해줌으로써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처럼 효용 중심의 논거를 제시해 대학에서 무상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같은 논리 구성에 가치적인 논거를 더하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 대학 교육은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이다. → 대학 무상교육을 통해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 할 수 있다.
· 대학 무상교육은 현재 예산으로 충분히 실행할 수 있다.
· 대학 무상교육의 도입은 사회의 계층 이동성을 확대한다.
첫 번째 논거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대한 가치적 논거로, 왜 대학 교육이 중요한지를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연결하며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당위성을 정립해준다. 다시 말하면, 찬성 측 입장에서 자기 행동(정책)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는지 설명함으로써 자기 행동(정책)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논거에서는 자기 행동(정책)이 실현할 수 있고,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증명함으로써 가치와 효용, 양 측면에서 대학 무상교육 도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위 예시와 달리 현실에서는 무수한 데이터만을 제시하며 대학 무상교육이 실현할 수 있고,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되는 토론을 자주 접한다. 대학 무상교육에 대한 토론뿐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되는 정책에 관한 토론 역시 그렇다. 그러면 토론이 끝난 후에도 주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청중은 감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논리 구조화를 하거나 논거를 배열할 때는 가치와 효용이라는 2가지 항목으로 나눠보자.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추게 될 것이다.
치열하게 논거와 반론이 오가는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논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토론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을 찾는 연습도 해보았다. 이러한 방법론을 제대로 숙지하고 활용해서 주제를 분석했다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만으로는 상대방이나 청중을 설득할 수 없다. 아직은 파편화된 정보일 뿐이므로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논리를 구조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비슷한 것끼리 묶거나 관련이 없는 것은 삭제하는 과정이다. 논제 분석이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면, 논리 구조화는 스케치의 어느 영역에 같은 색을 칠할지를 정하는 작업이다.
먼저 논리를 구조화하는 데 있어 다음의 기본 원칙을 기억해두자. 핵심 메시지를 구성할 때는 각 내용이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하며, 관련이 없는 내용은 서로 떨어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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