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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세상의 모든 주제를 분석하는 3가지 렌즈

by 토론왕 2023. 8. 1.

세상에는 무수한 이슈가 존재하고 언론 매체에서도 매일 수천, 수만 개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정보량이다. 다행인 건 정보 혹은 이슈들이 일종의 패턴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패턴을 이해하면 복잡해 보이는 이슈를 더욱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비슷한 양상의 정보를 묶어 패턴을 찾고 단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 안에서 최적의 아이디어나 대안을 찾아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작업이다. 
토론의 패턴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맞교환 토론, 상충 토론, 판박이 토론이다. 
먼저 맞교환 토론은 서로 대립하는 측이 옹호하는 가치가 모두 긍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토론이다. '맞교환'이라는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치 A와 가치 B가 모두 바람직하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가치가 증대하면 반대편에 있는 가치는 감소하는 상황을 뜻한다. 
이를테면, 원하는 물건이 2개 있을 때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1시간이 주어졌다고 가정해보자. 휴식도 취하고 싶고 독서도 하고 싶다. 둘 다 나에게 긍정적인 효용을 가져다준다. 문제는 휴식과 독서에 1시간씩을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독서에 시간을 더 쓰기로 선택한다면 휴식이 주는 효용은 그만큼 감소하게 되는 원리이다. 
이를 국정 운영에 적용해보자.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고 국가 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동시에 그 정책이 빨리 시행되어 많은 시민이 적시에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정 운영의 목적은 국가에 필요한 정책을 정하고 실현하는 데 있으므로 정부의 책무성(Accountability)과 효율성(Efficiency)은 모두 중요한 가치이고, 그 가치가 커질수록 좋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는 의사 결정 과정에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해 책무를 강화하면 반대로 정책을 실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하면 필연적으로 정부의 효율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가운데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을 시행하는 데 있어 이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예산을 집행하는 게 맞는지 따져보는 과정을 강조할수록 적시에 국민이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같다.
이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도 적용된다. 경제 개발과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보자. 독립적으로 볼 때 모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그러나 경제 개발은 일종의 환경 파괴를 수반한다. 경제 개발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면 환경 보호라는 가치는 그만큼 훼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 예시 가치: 정부 책무성 vs 정부 효율성 경제 개발 vs 환경 보호
 · 예시 주제: 대통령제 vs 책임총리제 또는 의원내각제 그린벨트 해제
이러한 원리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토론하는 데 있어 큰 차이를 만든다.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대통령제 폐지'에 대한 토론에서 상대방이 주장하는 가치를 반박해야 할 적대적인 가치로만 여기고 토론에 임할 것이다. 반면, 맞교환 토론을 이해한 사람은 상대측의 핵심 가치를 무작정 부정하기보다는 2개의 좋은 가치 중 왜 자신의 가치를 우선시해야 하는지 맥락을 강조할 것이다. 전자가 공격 중심의 토론을 한다면 후자는 더 전략적이고 설득력 있는 토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맞교환 토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맞교환 토론에서는 상대방이 옹호하는 가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현 실적인 제약을 인정하고 특정 상황에서 왜 우리 입장의 가치가 더 좋은지를 차근차근 풀어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치 간 불균형으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므로 올바른 균형점을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설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충 토론을 살펴보자. 동일하게 중요한 가치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맞교환 토론과 달리, 상충 토론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에 관한 토론이다. 즉, 가치 간 최적의 균형을 찾기보다는 상대방의 가치를 거부하고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낙태 합법화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종교계 입장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활동가들 간의 견해 차이를 떠올리면 보다 이해하기 쉽다.
 · 예시 가치 : 큰 정부 vs 작은 정부/칸트주의(의무론) vs 공리주의(목적론)
 ·예시 주제: 윤리적 딜레마 낙태죄 폐지 / 공공기관 민 영화 / 채식주의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당신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책임자이다. 수년 동안 정보 수집을 통해 최근 테러리스트 용의자를 체포했다. 내부 분석에 따르면, 이 용의자는 앞으로 있을 테러 계획의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음 날 테러리스트 그룹은 이틀 뒤 대규모 테러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들의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체포된 테러리스트에게 그 계획에 대 한 정보를 자백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해보았고, 이제 남은 방법은 그와 그의 가족을 고문하는 일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무고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테러리스트 한 명을 고문하는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때 양측의 가치는 양립할 수 없고. 이것은 둘 중 하나의 가치를 옹호하면 자연히 다른 가치를 배척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존엄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야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 결혼 합법화'도 상충 토론에 속한다. 결혼은 여성과 남성 간의 결합이어야 한다는 측과 성별 구분 없이 결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측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타협하지 못한다. 각 입장의 기저를 이루는 가치가 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충 토론에 접근할 때도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해당 이슈를 둘러싼 2개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파악하고 왜 그 가치가 옳지 않은지, 해로운 가치인지 증명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즉, 상대방의 가치를 반론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판박이 토론은 표면적으로 다른 이슈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증명 책임과 주요 쟁점이 반복되는 토론이다. 판박이 토론은 특히 정책 토론 주제 유형에 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합법화할 것이다', ···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다' 금지할 것이다'로 제시되는 주제에 자주 나타나는 토론 패턴이다. 이와 같은 패턴의 토론 쟁점을 미리 정리해놓으면 유사한 토론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예시 선택지: 합법화 - 기소 제외 -금지
 · 예시 주제: 장기매매 합법화 / 스포츠 도박 합법화 / 전자담배 금지 
다음의 주제를 보자.
 · 식용 개 도살을 금지할 것이다.
 · 미용을 목적으로 한 다이어트 제품의 광고 금지를 제안한다.
 · 유명인 자살에 대한 대중매체 보도를 금지할 것이다.
 . 미성년자의 성형수술을 금지할 것이다.
순서대로 동물권, 건강과 사회, 미디어, 청소년에 관한 토론인 것을 알 수 있다. 분야와 이슈가 다른 만큼 각각의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토론의 방향을 잡는 데 이러한 배경지식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위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쟁점은 금지하려는 대상의 유해성 여부이고, 다음은 금지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예: 암시장 등)과 대처방안에 대한 논의와 특정 대상을 합법화하거나 불법화하는 기준에 대한 논의가 주요 쟁점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각각의 주제가 다른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토론에서 증명해야 하는 내용과 전개될 흐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돈과 가치를 비교하는 시장 사회에 대한 찬반 토론에서 이러한 토론 유형이 나타난다. 에서 저자 마이클 샌델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제시하는데, 수많은 토론 주제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이슈로 각각의 상황과 쟁점에 대해서 고민해볼 것을 권한다.
 · 죄수들이 하루에 82달러를 내면 교도소 내 감방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감옥
 · 이마에 광고 문신을 새기는 대가로 777달러를 받을 수 있음
 · 용병으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여하면 1,000달러를 더 받을 수 있음
 ·미국의 한 주에서는. 나 홀로 운전자'라도 돈을 내면 2명 이상 탑승 차량을 위한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음
 · 50만 달러로 미국에 이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살 수 있음
 · 15만 달러를 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를 좀
 · 6,250달러를 내면 인도인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 
모두 시장과 도덕적 가치에 관한 이슈로, 현대 사회에서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고 어떤 영역에서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지에 관한 토론이다. 시장에서 재화로 상품을 거래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정부가 규제해야 할 선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슈가 반복된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 간 일종의 생활 방식'이 되어버린 '시장 사회(Market Society)'에 살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어디까지 시장경제 원리로 가치를 매기는 것을 허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토론자라면 지금까지의 관련 논의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토론을 잘 풀어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해 바라볼 수 있는 3가지 렌즈를 살펴보았다. 특정 상황에서 일부는 포기하면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렌즈, 세상에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으며 그에 따라 흑과 백으로 사회를 보는 렌즈,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동일하게 반복되는 쟁점을 파악하는 렌즈가 바로 그것이다. 토론에서는 논리를 넘어 토론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이 3가지 렌즈는 그러한 관점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며, 각각의 렌즈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토론할 수 있다.